학업·학교

학교로 인한 장기적인 아픔

Hooney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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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에 살고있는 09년생 남자입니다

저는 중학교때부터 정말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고, 좋아하고, 저의 인생이었어요.
저는 정말 추억도 많았고 친구들도 많았었기때문에 정말 학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남녀노소 할것 없이 잘 지냈지만, 제가 운동을 좋아했어도 거칠거나 너무 남자같은? 그런 친구들이랑은 같이 지내는게 불편했어요. 반대로 여학생들은 저의 마음의 쉼터 같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성으로 보지 않아도말이죠.
결국 졸업날과 함께 고등학교 지망하는곳을 정해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저는 짧게쓰긴 했지만 위에서 말한 이유들로 인해서 남녀공학으로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인천에는 공학이 정말 없습니다. 전국적으로 비교해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고로 일단 작성하여 제출하였고, 예비 소집일까지 갔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요. 하지만 저는 너무 겁이 났었습니다. 아무리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저의 학교생활이 어떨지 너무 예상이 갔어요.
결국 저는 자퇴를 하게 됩니다. 하루도 출석하지 않고 말이죠. 처음에는 저는 이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퇴를 하며
나는 많은것들을 배우고, 잘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날들이 가며, 그렇게 지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텅빈집안에 홀로 앉아서 밥을 먹고,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웬만한 남자 아니, 여자보다 감수성도 풍부하고, 감정적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학교 다닐때에도 남들과 비교하며 조금씩 성경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지금은 옆에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그전에 집은 제가 졸업을 한, 중학교와 정말 가까워서, 거실 창문 넘어로 제가 놀았던 곳들, 익숙한 종소리, 여름처럼 지나가는 추억들이 쌓인 곳들이 보이더라고요. 창문을 열때면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저에게 웃음을 짓게 만들면서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 작고작은 저의 어떠한 게으름도 있었겠지만, 여러가지 일들이 겹치며 저는 우울증이 옵니다. 병원을 가볼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저는 저의 상태를 단번히 알 수 있었어요. 1년의 시간동안 대부분을 집안에만 있었고, 너무 무서워서 친구들의 연락도 받지 못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퇴를 하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왔거든요. 연락도 없이요. 당시에 자퇴는 부끄럽지 않았어도 친구들에게는 부끄러웠나봅니다. 한마디로, 지내면서 무서웠어요.
그렇게 1년이 거의 다 끝날때쯤에 제가 용기를 내어서 먼저 친했던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단지 오랜만에 운동을 하고 싶어서 생긴 마음이었어요. 큰 걱정과달리, 친구는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만나서 운동을 했습니다. 그 후에 다른 친구들도 아주 가끔 만나서, 운동을 했어요. (캐치볼 같은것들) 그러면서 저의 근황도 전하고, 조금은 관계들과 저의 자퇴 사실에 대해서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아빠가 다시 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들어가는것이 어떡겠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1년을 쉰 채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지만, 아빠가 조금만 다니고 전학이라도 할 수 있게 알아볼거다. 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정확한 계획은 없었죠. 그렇게 새학기를 맞이하며 다른 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사실 저는 여기까지 중에서 이때가 가장 무서웠습니다. 저는 제가 알던 후배들과 친구들이 알아볼까봐, 어떡게 설명을 해야 할까, 도무지 생각나지 않고 말그대로 숨고싶고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이때가 예비 소집일이었어요. 하.. 정말 할 말은 많은데, 다쓰진 못하겠고, 더 결론으로 가자면, 저는 아직까지 그 학교에 다니고 있고, 어느정도 적응은 했지만 제가 처음에 예상했던 단점들과 스트레스들을 틀리지 않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가족이 양가 다 기동교이기도 하고, 예술을 하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많아서 자연럽게 음악을 많이 접하게 되었는데요. ㅡ러면서 음악인의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일단 남고보다는 공학이 이런거에 있어서 더 활발하잖아요. 글자 ㅜ 때문에 2번에 걸쳐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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